코미케웨이. 이젠 끝.

코미케가 끝나고.. 오늘은 오랜만에 다섯 시간을 자고 일어났습니다. 일본에는 8월 12일 밤에 왔는데, 5일이 지났다는 게 믿겨지지 않네요. 이제껏 2시간 이상 자본 날이 없음; 그래서 계속 수면 부족이었는지라 엄청나게 긴 하루를 보낸 기분입니다. 축제의 여운에 잠기며 포스팅~
(배경 음악으로는 북두의 권 실사판 오프닝 노래[모든 것이 끝나버리고..]가 어울립니다)







아직 일본이 아닙니다. 김포공할 갈 때 찍은 사진. 마침 본 영화 세 개가 붙어있길래..
봐라? 한국은 이렇게 영화 개봉이 빠르다! 일본은 언제 할지 모르지? 영화비도 비싸지?
난 심심하면 보러 다닌다 으케케 캭캭캭 하면서 염장을 지르기 위한 사진이기도
(오른쪽은 아니지만.. 퍼블릭 에너미는 언제 할지 모르고, UP은 12월에 함)

그리고 저의 오덕인생을 건(..) 여름 전쟁이 시작됩니다

첫째 날 밤. 코미케 전전날(D-2).
D-1이면 숙소를 잡아놔야 하지만 이 날은 호텔 잡을 메리트도 없고,
밤 비행기로 와서 호텔까지 가는 교통비도 아깝고.. 해서 넷카페 이용.
일본 인터넷 카페의 장점은 다양한 잡지류를 볼 수 있다는 거 아닐까요. (한국에도 만화방은 있지만) 읽을 책이나 잡지가 많다면 본전은 뽑을 수 있을 듯. (설비가 좋은 넷카페가 있는가 하면, 우리네 PC방처럼 의자랑 컴퓨터만 있는 곳도 있고 천차만별이지만) 이번에 생전 처음 넷카페 샤워실을 써봤는데 의외로 좋더군요.. 쓰기 편해요.. 아.. 하지만 역시 한국에서 그대로 가져온 피로를 풀기에는, 설비 좋다고 친구가 추천해준 넷카페의 엄청 비싸보이는 리클라이닝 체어로도 역부족이었음. 그래서 낮에 친구 보자 마자 호텔↓을 찾아 감 (원래 예약했었지만)


호.. 호텔? 넴. 호텔. 도쿄 외곽의 3X00엔 비즈니스 호텔. (이거 보고 아! 거기! 하신 분, 덧글 적지 말아주세요. 혹은 비밀글로 적어주세요. 전 조용히 덕질하고 싶습니다. 여긴 여행 정보 블로그가 아니라 순수 리얼 덕후라이프 블로그거든요. 일반인 KIN 본연에 충실하고 싶다능)
위 방은 황량해 보이지만 곧 덕스러운 방으로 변화합니다 (그런데 오늘 방 설명 종이를 보니까"하루에 한 번 방 내부를 확인한다"고 써있었.. ..돌이킬 수 없으니 생각을 관두도록 하자)
그런데 3X00엔이어도 이런 환율로는 괴롭습니다. 위 사진은 지금 찍은 것인데, 대한민국 국민이 기껏 해외에 가도 마음껏 책 한 권 사지 못 하고 중고서점을 기웃거리고, 한국에서 가져온 책으로 코미케 줄 서는 시간을 때울 때 정부는 대체 뭐하고 있는 겁니까? 한국 오덕국민의 위상을 이렇게 떨어뜨려도 되는 겁니까? 뭐시기 값만 올려주면 지지하듯이 환율만 떨어뜨려 주면 악마에게라도 혼을 팔겠소! (농담입니다만 실제 세상사가 그렇다면? 흠 좀 많이 무섭군요)

여러가지 일이 있었고 (자세한 설명과 사진은 생략한다) 호텔에서 숙박을 한 후 (늦어서 TV 좀 보고 방 정리만 좀 했는데 새벽 2시. 심야 애니를 리얼타임으로 볼 수 있어 좋았지만 내일을 위해 그냥 잠) 빅사이트로 향했습니다. 첫째 날은 목표물이 없어서 6시 쯤에 열차를 탔죠.
이쪽 업계 광고들이 우리를 반겨주는 국제전시장역. (듣자니 이벤트 기간 아니어도 그렇다고 함.. 코미케 때만 와서 몰랐음) 이제 역을 나오면 가벼운 발걸음으로 코믹마켓에 참가할 수가



없습니다. 사진이 뽀얗지만 줄 서는 사진인데, 화면에 보이는 것만이 줄이 아닙니다. 사방이 줄로 둘러싸인 멋진 광경의 감동은 오타쿠의 발상지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이 "일본에 덕후가 이렇게 많았다니" 할 정도고, 일본에 사는 일본인이 "일본에 사람이 이렇게 많았다니" 할 만큼 멋진 광경입니다. 현지인도 세상에 이렇게 긴 줄이 있는 걸 모를 정도니 체험할 가치가 있다! 고 생각할 리 없고, 세상엔 모르는 게 더 행복한 일도 존재합니다. 코미케 절대로 오지 마세요. 반대로 이 줄을 즐길 수 있다면 당신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것. 이젠 끝. 난 이젠 끝.
현실 도피 풍경으로 심경을 대변. 오른쪽 끝의 빌딩은 합체했을 때 하반신이 됨 (의미불명)

그리고 첫째 날 오후에 숙소에 돌아온 내게는 (장기전이 예상되기 때문에 중요도가 낮은 첫째 날은 일찍 집에 들어왔음) 내일 돌아볼 곳 체크라는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낼까지 열심히..
한국에서 컴퓨터로 체크를 대충 해놨었는데, 출국 직전 컴퓨터 파업(?)으로 메모 못 했거든요. (왜 메모를 하냐면 프린터가 없어서) 첫째 날은 죠죠 부스 돌고 카탈로그 사면 땡이라 빨랐음.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던 컴의 요구를 하루 빨리 들어주고 싶은데.. 돌아가면 꼭 들어보리라.

그런데 혼잡이 예상되는 둘째날&셋째날을 위해 좀 쉬려고 했더니만, 건담 보여준다고 연락이 와서 나갔습니다. 원래는 "나.. 난 건담 따위는 관심 없다능! 겟타나 건버스터면 모를까, 그런 프라모델은 볼 생각 없다능!" 했는데, 교통비 안 들게 차로 태워다 준대서 쏜살같이 나감 (..)



반다이의 CG 기술력의 집대성. (틀려) 사진으론 알 수 없는 감동이 있는데,
다가갈 수록 점점 커진다(*당연하다) 사진만 봤을 땐 아무 감흥 없었으나
실제로 보니 볼 가치가 있더라. 실물 크기 수퍼 로봇이 눈 앞에 있다니~
(*건담이 리얼하다지만 크게 보면 결국 마징가Z의 범주에 들어가죠)

마침 도착 10분 후인 8시에 건담이 움직인다(!)고 해서 잔뜩 기대하고
기다렸더니 별로 안 움직여.. 어 근데 별로 안 움직이는데 왜 이리 즐겁지!
뭐 그런 느낌이었는데 동영상을 회선 관계 상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동영상이 올라가면 아스카랑 결혼하겠다
(전세계 아스카 팬들에 의해 타살되는 복선)

네. 건담을 본 후엔 남자 셋이서 '파'를 또 봤습니다 [..]
게다가 전에는 내가 F14~16을 고르니까 "오오! 전투기야!"
하면서 밀덕스러운 얘기를 하던 비슷한 또래의 덕후들이었지만
이번에 같이 본 사람은 30대 어른들. 게다가 한명은 덕후도 아님..

그 분 말씀이 "사실 별 것 아닐 줄 알았는데 울었다.(*진짜 눈물 닦는 거 봤음)
대단한 것을 본 기분이다. 에반게리온이 이런 건 줄 몰랐네. 너 아니면 계속
안 봤을 텐데. 고맙다"
라고. 물론 이걸 본다고 오덕이 될 리는 없지만, 영화
자체가 좋으니까. (시간을 달리는 소녀 보고도 우셨다니 감동 포인트를 알겠음)
너무 기본적인 질문이라 미안한데, 에바는 왜 애들이 타는 거야? 무슨 계획은
원래 나오는 얘기야? 하고 물으시길래, 모든 의문의 해답이고 영원한 명작인
END OF EVANGELION을 꼭 봐야만 한다고 못을 밖아뒀습니다 (어이 잠깐)

...아니 난 그거 정말 좋아하는데다, 이 분은 영화 매니아이시기에 안노 감독이
어떤 감독인지, 신극장판과 90년대판이 어떤 관계인지 알아두시라고 추천한 것.
90년대의 에바 붐이 어떻게 마무리됐는지는 누구나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쵸딩이었던 저는 TV25~26화를 보고 공감했는데 중딩 때극장판 보고 더 공감..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간 현재의 안노 감독이 만든 신극장판 "파"에도 공감.. 한 마디로
한 오타쿠 감독의 인간적 행보에 리얼 타임으로 싱크로되고 있다는.. 절망적이군요 (..)

그래서 "오타쿠가 나아가는 역사"라는 의미에서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은
"신화"가 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생 신화"는 현재 진행 중입니다.
스스로를 부정하고 스스로의 작품을 추앙하는 이의 현실 또한 부정했지만
실낱같이 남겼던 희망의 씨가 지금 이제서야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오오..
아무리 지금 비참한 오덕이라도 언젠가는 ○○처럼.. 희망을 가집시다 (..)

관객수 200만 돌파라는 기록적인 히트를 갱신한 올 여름 최고로 감동적인 오락 영화 이야기로 잠시 현실 도피를 했습니다만, 안노 감독과 달리 저는 아직 신화가 되지 못 했기 때문에, 집에 돌아온 제게는 코미케 숙제를 한다는 비참한 현실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던 데부터..)
이것만 좀 해결 해놓고 갔어도 자는 시간이 좀 늘었을 텐데.. 알람 안 맞추고 3시에 자도 5시 직전에 눈이 떠지니 정말 오덕의 본능은 어쩔 수 없군. 저주 받은 오타쿠들아 극장에서 나가라(90년대의 안노 감독은 사실 이런 말 안 했지만) 소리를 왜 듣는지 알 거 같다 정말.. 아스카가 왜 "난 네 인형이 아냐" 하면서 화냈는지도 알 것 같다.. 미안.. 미안하다 아스카.. 난 아스카가 경멸하는 인간이 되버렸어.. ..하지만 그런 내게도 ○○과 ○○과 ○○가..! (에바 얘기 그만)

*에반게리온 "파"는 시사회도 안 했고, 심지어 팜플렛 조차 테이프와 경고문으로 봉인되있고, 실제로 아무 것도 모르고 보는 게 재밌는 내용이니 되도록 정보를 얻지 말고 견디시길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괴로움 끝에 복음은 있으리.

그리고 다시 찾아온 코미케 타임. 사실 코미케는 줄을 서는 것이 메인인 이벤트임. 그나저나 합체는 언제 하나.. 둘째 날은 일반적으론 여성향 메인으로 알려져있지만 (그래서 비교적 여성 참가자가 많고 남성 참가자가 적은 날이기도) 이 날은 이상하게 참가자가 많았다. 아니 왜? 범인은 "동방"이라고 생각함. (둘째 날은 동인게임 소프트들도 포함되고요) 물어보니 역시 다들 동방이 범인일 거라고. 뭐 동방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동방 부스 참 강세더군요. 만일 내가 동방 프로젝트 팬이었다면 이 날 코미케 회장 東1 구역에서 절대 탈출할 수 없었을 테고 이 날 모든 자금을 코미케에 탕진하고 일본에서 객사했을지도. 아니면 지금 강제송환되고 있을지도 모름. 동방이 무섭게 많았음. 앞으로도 동방을 하지 말자고 굳게 다짐하게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 근데 관심이 가는걸.. 어쩌면 좋아.. 벌써 2차 창작도 몇 개 구입. ..이젠 정말 끝인가(..)

마지막 날을 위해 밤 11시에 빨래를 하면서도 열심히 숙제를 하는 착한 어린이. 그런데 숙제가 너무 많아서 끝나지 않아.. ..뭐 나머지는 줄 서면서 해도 되지만 뭔 스케줄이 이리 빡빡한지.. 남자가 들어올 때 마다 저 받침대가 필요하신지 여쭤봐 가면서 꿋꿋하게 숙제를 계속했으나, 여학생들이 들어올 땐 숙제를 접고 나갈 수밖에 없더군요. 아직 인간을 다 버리지 못 했어..

그리고 드디어 코미케 마지막 날.. 인데.. 매년 많은 사상자를 낳는 최고의 난관 "태양"이 또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죽는 사람은 없지만 실려가는 사람은 가끔 있음) 첫 날은 여름 코미케로 치면 최고의 날씨(비가 올 듯 말듯 흐린데 비는 안 내리고 구름에 태양만 가려진다. 게다가 간혹 바람이 분다!)였는데 어제부터 점점 맑아진다. 이번엔 비교적 시원해서 다행이지만 (2년 전에 갔을 땐 40도의 기록적 폭염이었음) 계속 기다리며 태양의 공격을 받으면 위험하다.
(빌딩의 은혜) 이렇다가

이렇게 되서

이러면 OH NO

이 날은 그나마 빌딩이 잠시 막아줬는데, 둘째 날 다리 위에 서있을 때 스탭이 "이 다리가 가장 쓰러지는 사람이 많으니 햇볕 대책을 확실히 해달라. 수건 하나 뒤집어쓰나 안 쓰냐도 큰 차이가 있다"고 경고를 하며 다니더만요. 저는 둘째 날 인간을 버렸기 때문에, 비어있던 가방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견뎠습니다. 상당히 맘에 들어서 셋째 날도 그 스타일로 나가.. 기 전에 잠깐.
남은 숙제 해야지.. 뜨거워서 혼났습니다. (앉아있으면 서있는 사람이 보호막이 되주기는 함) 근데 바람이 불어서 서있는 게 더 시원하기도. 아무튼 이동 시작을 기다리는 타이밍에 자리를 세팅하고 숙제숙제 (신발은 가방 밑에서 경사를 만들고 있음) 난 정말 성실한 학생인 것 같아.
..이거 안 하면 제 시간 안에 다 못 돌아봅니다. 특히 셋째 날은. (실제로 반은 성공하고 반은 실패했음. 눈 앞에서 다 팔리는 장면을 보는 것은 코미케에서 누구나 겪는 아픔이기도..) 원래는 부스만 적는 게 아니라 지도에서 어떤 동선으로 이동할지도 미리 계획해놓고 가야 한정된 시간 안에 최선을 다 할 수 있죠. 난 大手 서클은 안 사니까 괜찮을 거야~ 하고 방심했다간..

한국에서 온 친구 부스 찾아가니까 머리의 수건을 보고 "너무 동화된 거 아니냐"라고 하길래 황당. 동화는 무슨 동화. 나는 내 스타일을 찾았을 뿐이다! 누구를 위함도 아닌 나를 위해서. 사람을 버리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달려든 거야! 왜냐하면 즐거우니까! 괴롭고 아프지만 괜찮아! 그런데.. 그렇게까지 해도 코미케를 이길 수 없어..! 어떡하지..? 역시 진정한 오타쿠로 각성할 수 밖에 없는가.. 이 세상의 생명이 아닌 무언가로.. 그리고 세상은 끝난다. 이젠 끝..

모든 것이 끝나고, 함께 참전했던 친구들과 오꼬노미야끼를 먹으며 담소를 나눈 후..
드디어 아무 약속도 예정도 시간 걱정도 없이 잠을 잘 수 있는 날이 찾아왔습니다.
(사진이 깔끔하지 못 해서 죄송. 밤에 눈 뜰 것 같아서 준비했던 도시락임)
새벽에 일어나니 TBS가 베를린 육상선수권을 독점 생중계하고 있더군요.
(사진은 여자 800M 경기 후 쉬는 모습임) 곧 남자 100미터라길래 봤는데..

자마이카 대표 Usain Bolt 선수가 9.58초 세계 신기록을 갱신하는 순간을 목격하고 말았음
2위인 미국 대표 Tyson Gay 선수는 9.71초로 뛰었는데도 2위임!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2위.. 2위라니! 9.71초가 2위라니! 게다가 뭐?! 9.58초?! 세계신기록? 허허허 이건 말도 안돼 ..말도 안 된다고.. 타이슨 게이 선수에게 심심한 위로를.. ..할 새도 없게 흥분되는 기록입니다.

현장에 가있는 리포터가 하던 말이 "시작 전까지 굉장히 노력하고 엄청난 각오를 했는데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끝나버려서, 한 순간에 로또에 다섯 번 당첨된 듯한 얼떨떨함에 휩싸인 듯 멍한 느낌이다" 뭐 대충 이런 요지의 말을 했는데(..) 그야말로 이 세계신기록을 낸 직후 느낌은 코미케를 마친 나의 기분이 아닐지.. (결국 그거냐) 드디어 한 사람의 오타쿠로 각성한 느낌?
(2년 전에 왔을 때는 여러가지 부족함이 많았는데, 이번에도 그렇지만, 만족감 또한 큽니다)

오타쿠는 대개 어느 정도 컬렉션을 합니다만, 컬렉션을 하고 오타쿠틱하게 꾸민다고 해서 (요즘은 아키바계라는 말을 쓰더군요) 오타쿠라고 할 수는 없죠. 오타쿠는 캐릭터 상품이나 창작 관련으로 소비를 하는 주체이기도 하지만, 오타쿠란 말 뜻은 소비를 하는 주체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오타쿠라는 인생. 삶의 방식. 라이프 스타일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컬렉터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애니메이션 지식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닌 거죠. (물론 그런 사람들은 오타쿠일 가능성이 높지만) 가슴 속에 이쪽 문화에 대한 욕망사랑을 품고 사는 사람을 오타쿠라고 합니다. 그 집착이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일그러진 애정으로 변할 수도 있지만 똑바로 행복을 향해서 그 사랑을 품고 나아갈 수 있게 됐을 때, 오타쿠는 "각성"한 진짜 오타쿠가 되고, 주변 사람에게 행복과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창조적인 존재가 됩니다.

오타쿠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단어입니다. 오타쿠의 욕망과 집착이 그 자신 뿐 아니라 타인의 행복 마저 파멸시킬지도 모른다는 자각, 또는 타인의 인식으로 인해, 오타쿠란 부정적인 단어가 되었습니다. 한 때 오타쿠들이 가장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의 감독 또한 그렇게 생각했고 오타쿠의 암울한 현실에 절망했으며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것은 역설적으로, 감독 스스로가 타인과 함께 행복해지는 것을 바랬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끔 가는 떡볶이집 아줌마가 너도 오타쿠냐고 물으시길래 "그런 말을 어디서 배우셨어요?" 하니까 TV 무슨 방송에서 나온 건데, 코스프레 의상을 여자친구에게 입히는 플레이를 즐기는 의대생이 나왔다나. 너도 그런 거 좋아하니? 하셔서 뿜었던 일이 생각나서.. 개인적인 오타쿠 정의에 대해서 적어봤습니다. 그 의대생은 코스프레 플레이 오타쿠라면 오타쿠지만 일반적인 오타쿠와는 다르지 않을런지. 지금은 일반적으로 만화 같은 걸 좋아하기만 해도 오타쿠니까, 코스프레 플레이가 좋아하는 만화나 창작물의 연장선에 있다면 오타쿠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아줌마 말씀만 들어선 잘 모르겠더군요. 의상을 직접 만든다면 100% 오타쿠인데..

저는 계속 제가 오타쿠가 아니라고, 진정한 오타쿠가 되고 싶지만 오타쿠가 되려면 멀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중학교 때 PC통신에서 오타쿠의 개념을 알았을 때부터 그랬죠. 저는 지식욕이 없어서 무슨 만화 설정 같은 걸 알아보기도 귀찮아 하고, 그렇다고 만화나 애니, 게임을 엄청 많이 즐기는 것도 아니고 (요즘은 보는 만화가 죠죠 정도 밖에 없고 애니도 거의 안 보고 게임은 1년에 하나 깨기도 힘들고) 뭐 그래봤자 일반인이 보면 심각한 오타쿠지만 (..)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오타쿠"가 되려면 나는 너무 스펙이 딸리고 노력도 안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가 오타쿠라고 자신 있게 말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좋아하는 작품도 많지 않고 그 작품을 위해 하는 것도 별로 없는 얕은 수준의 오타쿠지만, 제 안에는 분명 작품에 대한 사랑이 존재하고, 그 사랑을 원동력으로 행동할 수 있고, 거기서 만족을 얻고, 그 만족감을 다른 오타쿠들과 공유할 수 있고, 거기서 얻은 에너지로 오타쿠가 아닌 타인에게도 행복을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신도 악마도 될 수 있는 힘. 신이 인간에게 남긴, 아니 인간이 인간에게 전달하는 무시무시한 힘이죠.. 보통 사람은 절대 못 할 아무리 괴로운 일도 그냥 해버리게 만드는 무서운 힘. 그 일을 좋아한다는 사랑의 힘. 그걸 어떻게 쓸지는 님 맘. 확실한 건 소유욕이나 집착욕에 빠지면 파멸의 길로 간다는 것. 중요한 것은 창조. 진정한 사랑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힘입니다. (야한 뜻 아님) 절망 속에서 희망을 낳고, 어두운 현실 속에서 나와 이웃의 행복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게 사랑입니다. 그게 오타쿠들의 가슴 속에는 있습니다. 만약 그것을 온 천하에 증명한다면 에반게리온은 정말로 신화가 될 텐데, 과연 어떻게 될런지. 국내에서도 실시간으로 즐길 수 있게 되면 좋겠군요.

아무튼 길었던 오타쿠 레포트(?)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젠 끝."

이젠 끝입니다. 그럼 안녕.

아, 내용이 하나 더 있었군요.

"에바 파를 보자. 그럼 구원 받는다"

저는 일본 여행 기간이 남았기 때문에, 그러나 돈이 없으므로 한 동안 히키코모리로 지내다가 누가 밥 사준다고 부르면 나가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잘 가. 일본 여행. 사명을 마치느라 수고했어. 내 목적을 위해서 일본 여행을 이용한 것 같아서 꺼림찍하지만.. 행복은 굴러오는 게 아니라 직접 걸어가서 잡아야 되는 거니까. 아, 너무 걸어서 다리가 아프다. 그래도 오타쿠들한테서 나는 냄새는 별로 좋지 않은데... 아,1년 만에 코미케 줄을 서니까 굉장히 마음이 편해지던데,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갈 듯.. 그냥 좋아한다는 거구나. 난 지금까지 좋아한다는 게 뭔지 잘 몰랐는데, 앞으로는 이 힘을 인식하고, 좋은 쪽으로 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어졌어. 모두 노력하는 오타쿠가 됩시다. 폭주하지 말고요! ..저는 자주 폭주하므로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 (사실 지금도 폭주 중. 우어엉) 돈 없지만 에바 파는 한 번 더 보고 집에 갈 거니깐.

한국에서도 개봉해주세요... 금단 증상 일어난단 말이예요!!!

"에바는 기다려도 해주지 않아. 그래서 일본엘 가는 거지♪"
by 밀피 | 2009/08/17 14:21 | 오덕인생 | 트랙백 | 핑백(2) | 덧글(12)
트랙백 주소 : http://jojo.egloos.com/tb/1939198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Linked at 밀피의 기묘한 모험 : 지금 .. at 2009/09/08 23:56

... 니다. 변화와 파격의 예고일 뿐.. 서를 안 보신 분도 파는 볼 가치가 있을 것임. 겨울 개봉한다는 소문이니 그 때 꼭 보세요. 그나저나 파가 보고 싶다. 7월에 보고 뿅간 후 8월에 또 일본 갈 기회가 있었고 돈 없는 와중에 두번이나 볼 수 있었지만 (신이여, 감사합니다) 그래도 세 번 못 본 게 아쉽다. 아직도 보기 전에는 기대가 되고, 몰입해서 ... more

Linked at 밀피의 기묘한 모험 : "파".. at 2009/12/05 14:25

... ☆☆☆☆☆☆☆ 「사람을 버린 오덕의 힘, 보여주실까!」 지갑을 희생시킬 각오로 덤벼야 비로소 열리는 활로도 있습니다. 그것이 덕후의 길!!! 처음 본 감상 / 신코미케:파 / 억겁의 세월 / 기다리느라 지쳤지만 재밌으니 괜찮아!! ... more

Commented by twenty at 2009/08/17 15:26
긴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일본의 코미케는 한번 가보고 싶긴한데 역시나 이런저런 부담 때문에.... 그나저나 저 건담은 언제 출격하는 겁니까?
Commented by 밀피 at 2009/08/18 02:37
안 가시는 게 정신건강에도 육체건강에 좋습니다.. 좋아하는 장르의 소규모 온리전은 어떨까요? ...아 죠죠 온리전 정말 가고 싶네요 으허허 (건담은 아므로.. 아니 각트가 타면 출격하지 않을까요)
Commented by Zori at 2009/08/17 15:27
이런 알찬 포스팅이라니 이것이 숙제하는 오덕의 힘인가! 우와와와와와와
Commented by 밀피 at 2009/08/18 02:37
허허 최대한 간략하고 내용 없는 포스팅을 목표로 하는 내가 어찌 이런 알찬 포스팅을.. 했나 다시 보니 역시 별 내용은 없었다 [뭥미]
Commented by malseman at 2009/08/17 15:30
수고하셨습니다. 힘드셨을듯...
건전한 오타쿠상에 관한 이야기, 굉장히 인상적이네요.
Commented by 밀피 at 2009/08/18 02:38
정말 인상적인 에반게리온 "파"가 국내 개봉할 수 있도록 모두 요구를.. ..해봤자 일본에서 인기가 엄청나서 싸게 들여오긴 글른 거 같은데 어떻게 될런지요.
Commented by 강초장 at 2009/08/17 17:11
우와 코미케 짱 부러워요.. 코미케 마지막에 갔던게 언제더라.
익숙한 풍경들이 많이 보이네요.
Commented by 밀피 at 2009/08/18 02:39
허억 코미케에 가셨단 말입니까.. 용자시군요 (즉 저는 용자입니다 [야]) 진짜 감동적인(?) 풍경은 사람의 물결이지만 실제로 봤을 때의 감동을 위해 남겨두었습니다.
Commented by 블루백 at 2009/08/17 22:29
우와..건담 보고 싶어지네요...사진으로 보면 그냥 그럴것 같은데 직접보면 되게 웅장할것 같음 ㅎㅎ
Commented by 밀피 at 2009/08/18 02:42
음.. 사진으로 보면 "뭐야 이 프라모델.. 반다이 무서워.."였는데 거대로봇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건담을 안 좋아해도) 정말 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실제로 일반인도 대단하다고 하더군요. 나라의 불상을 처음 봤을 때처럼 충격을 받았다나 (웃음)
Commented by 젠카 at 2009/08/17 22:33
개인적으로 인터넷 상의 오타쿠론(?) 중 가장 그럴 듯 한 말씀을 하시고 계신 것 같네요. 저랑 비슷하신 것 같은데요^^; 저는 라이트노벨로 졸업논문을 쓰고 오타쿠 문화로 박사를 꿈꾸는 사람입니다. 최소한 석사정도는 오타쿠로 따고 싶어요(9월에 대학원진학예정). 그래서 오타쿠가 과연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계속 던지는데요, 결론부터 말하는 저는 오타쿠는 '성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캐릭터 한 100명 쯤 나열해 놓고 80%이상 알면 골수 오타쿠고 하는 식의 테스트는 가장 저열한 수준의 오타쿠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카다 토시오가 주창하는 엘리트 의식에 쩔은 오타쿠도 실제랑은 거리가 멀구요, 그것보다는 한가지 대상, 특히 애니나 특촬, 게임의 캐릭터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자를 저는 오타쿠라고 봅니다. 이를 위해서 당연히 일정 수준 이상의 지출을 하고, 캐릭터를 재창조하는 2차창작을 하거나 즐기거나, 혹은 자신이 직접 해당 캐릭터가 되거나(코스프레) 하는 거죠. 혹은 해당 캐릭터에 자신의 욕망을 투여하거나 하고요(BL동인지나 남성햔 18금 동인지는 극단적 예라고 봅니다).

암튼 초면에 뻘덧글이지만, 여행 마무리 잘하시구요^^ 저도 언젠가는 코미케 한번 참가해야 하는데ㅠㅠ
Commented by 밀피 at 2009/08/18 02:59
반갑습니다. 네. 오타쿠의 이유는 애정과 욕망이니까, 컬렉션이 많아서 오타쿠다. 많이 알아서 오타쿠다. 이건 맞으면서 틀린 말이죠.. 코미케에 오타쿠가 수두룩하지만 오타쿠라고 꼭 코미케를 가는 것도 아니고.. 코미케를 아주 싫어할 수도 있고.. 전혀 상관 없지요. 중요한 건 사랑. 그 사랑으로 인해 무엇을 하느냐,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는 삶을 사느냐는 각자의 취향과 인간성에 달려있겠죠. 저는 너무 뜬구름 잡는 소리를 주저리 주저리 하고 있어서, 언젠가 젠카님 생각을 제대로 정리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코미케. 일반인에게는 절대 존재를 알리고 싶지도 않고, 같은 오덕에게도 오라고 하기는 꺼려지는 그런 곳이죠. 코미케는 코미케대로 코미케라는 장르이니 거기에 매력을 느끼실 경우엔 오세요 오세요. 지옥에서 기다립죠! [..]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Feel invisible matter
by 밀피
Calendar
ドッギャァーーン
카테고리
JOJO & SBR
서적
게임
영상
데노
오덕인생
기타 잡담
라이프로그
신세기 에반게리온: 파(破) O.S.T [2CD 스페셜 에디션]
신세기 에반게리온: 파(破) O.S.T [2CD 스페셜 에디션]

포토로그

σ
최근 등록된 덧글
마블에서 아이언맨이 영..
by 풍신 at 12/30
성형삘은 모르겠지만 키..
by 밀피 at 12/28
아 오늘이었네.. -ㅅ-..
by 밀피 at 12/28
오 누군가 했더니!! 잘 ..
by 밀피 at 12/28
어떻게 그렇게 똑같이 ..
by 밀피 at 12/28
ㅋㅋㅋㅋ 셜록홈즈 같이 ..
by 악하리 at 12/27
전 첨에 카레카노 음악 쓴..
by 밀피 at 12/26
아이곸ㅋㅋㅋㅋㅋㅋㅋ..
by スナヲ at 12/25
저는 <파>도 떡밥일 거..
by amitys at 12/23
하하, 겐도+후유츠키의..
by amitys at 12/23
이전블로그
2009년 12월
2009년 11월
2009년 10월
2009년 09월
2009년 08월
2009년 07월
2009년 06월
2009년 05월
2009년 04월
2009년 03월
2009년 02월
2009년 01월
2008년 12월
2008년 11월
2008년 10월
2008년 09월
2008년 08월
2008년 07월
2008년 06월
2008년 05월
2008년 04월
2008년 03월
2008년 02월
2008년 01월
2007년 12월
2007년 11월
2007년 10월
2007년 09월
2007년 08월
2007년 07월
2007년 06월
2007년 05월
2007년 04월
2007년 03월
2007년 02월
2007년 01월
2006년 12월
2006년 11월
2006년 10월
2006년 09월
2006년 08월
2006년 07월
2006년 06월
2006년 05월
2006년 04월
2006년 03월
2006년 02월
2006년 01월
2005년 12월
2005년 11월
2005년 10월
2005년 09월
2005년 08월
2005년 07월
2005년 06월
2005년 05월
2005년 04월
2005년 03월
2005년 02월
2005년 01월
2004년 12월
2004년 11월
2004년 10월
2004년 09월
2004년 08월
2004년 07월
2004년 06월
2004년 05월
2004년 04월
2004년 03월
2004년 02월
이글루 파인더
rss

skin by zodiac47